평창 오대산 선재길 트레킹 2부(선재길 걷기)

김평진 기자 / 기사승인 : 2023-04-27 20:07:27
  • -
  • +
  • 인쇄

 

오대산 선재길 입구. 오대산 ‘선재길’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에 있는 월정사에서 출발하여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약 9km 정도 길이의 아름다운 걷기길이다. 월정사 전각이 끝나는 지점에 선재길 입구가 있다.  

 
[뉴스써치] 오대산 ‘선재길’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에 있는 월정사에서 출발하여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걷기길이다.  

원래 ‘선재길’은 1960년대말 도로가 나기 전부터 스님과 불교신도들이 다니던 길인데, 오래 전 스님들이 오가던 옛길을 되살려 2013년 10월에 개통된 길로서 일반인들도 걷기 편하게 만들었다. ‘선재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옛 사람들의 흔적을 통해 과거를 만날 수 있고, 오대천을 품은 숲 터널을 지나면서 다양한 동물과 식물 등을 접하게 되어 대자연의 일부가 된 자신을 만날 수도 있다. 

오대산 ‘선재길’에서 ‘선재(善財)’라는 말은 ‘화엄경 입법계품’에 나오는 구도자의 이름이다. ‘선재(善財)’동자는 지혜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구도하였는데 나중에 보현보살을 만나 아미타불의 불국토에 왕생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선재(善財)’동자는 화엄경에서 지혜와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표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월정사(月精寺)를 창건한 자장율사도 선재(善財)동자의 구도행각을 따르고자 했다고 전해진다. 

 

선재길 첫 번째 길, 산림철길. 선재길의 첫 번째 길은 ‘산림철길’이다. 일제 강점기 때 일제는 오대산의 울창한 산림을 벌채하기 위해 상원사까지 협궤레일을 깔아 소나무, 박달나무, 참나무 등 27종의 나무를 베어내어 1927년부터 해방 전까지 주문진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해 갔다. 이 때 협궤레일을 깔아놓았던 곳에 걷기길을 만들고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 길 이름을 ‘산림철길’이라 이름 붙였다.  


필자는 이러한 선재(善財)동자와 자장율사가 추구한 바대로 옛 스님들이 오가던 ‘선재길’을 걸으며 ‘나의 참된 의미와 존재’를 찾아보는 깨달음을 얻으려고 노력하였다. 

필자는 2023년 1월 14일 월정사 경내 산책을 마친 후 오전 11시 55분 선재길 입구에서 본격적으로 오대산 ‘선재길’ 트레킹을 시작하였다. 

오대산 ‘선재길’은 시대를 반영한 다섯 개의 테마길로 구분되어 있다. 첫 번째가 ‘산림철길’이고, 두 번째가 ‘조선사고길’, 세 번째가 ‘거제수나무길’, 네 번째가 ‘화전민길’, 마지막 다섯 번째가 ‘왕의길’이다. 

 

 

반쯤 언 오대천 계곡. 1월 중순은 아직 겨울이 한창인 때이다. 월정사와 상원사 사이를 흐르는 오대천의 경우 겨울철 수량이 많지 않아 날씨가 추워지면 계곡물이 반쯤 얼어붙어 얼음과 눈, 물과 바위가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이룬다. 
 

첫 번째 길은 ‘산림철길’이다. 일제 강점기 때 일제는 오대산의 울창한 산림을 벌채하기 위해 상원사까지 협궤레일을 깔아 소나무, 박달나무, 참나무 등 27종의 나무를 베어낸 후  1927년부터 해방 전까지 주문진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해 갔다.

 

이 때 협궤레일을 깔아놓았던 곳에 걷기길을 만들고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 길 이름을 ‘산림철길’이라 이름 붙였다. 산림철길의 마무리 장소에 널찍한 일제강점기 제재소 터가 남아 있다.  

두 번째 길은 ‘조선사고길’이다. 선재길 중간에 조선왕족실록과 의궤를 보관하던 조선 후기 5대 사고 중의 하나인 ‘오대산 사고(史庫) 터’가 있다. ‘오대산 사고’에는 조선왕조실록 788책이 있었으나 일제가 동경제국대학으로 무단 반출했다. 간도대지진 때 대부분 불탔고 27책만 1932년 우리나라 경성제국대학으로 돌아왔다. 

 

일본은 2006년 또 다른 47책을 우리나라에 넘겨 오대산 사고본은 74책이 되었다. 74책이 된 오대산 사고본은 2016년 소장처가 서울대 규장각에서 국립고궁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이후 국립고궁박물관이 일본 경매에 등장한 오대산 사고본 중 ‘효종실록’을 추가로 구매하면서 현존하는 오대산 사고본은 총 75책으로 늘었다. 

 

일제 강점기 제재소 터. 일제 강점기 때 일제는 오대산의 울창한 산림을 벌채하기 위해 상원사까지 협궤레일을 깔아 소나무, 박달나무, 참나무 등 27종의 나무를 베어낸 후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해 오대산 안에 제재소 회사를 만들었다. 1927년부터 해방 전까지 이 곳 제재소에서 제재한 목재를 일제는 주문진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해 갔다. 선재길 ‘산림철길’의 마무리 장소에 널찍한 일제강점기 제재소 터가 남아 있다.  


세 번째 길은 ‘거제수나무길’이다. 우리 조상들은 곡우를 전후하여 ‘곡우물’을 마시면 잔병을 앓지 않고 건강해진다고 믿었던 풍습이 있었는데 거제수나무 수액이 곡우물로 마시는 것의 으뜸이었다고 한다. 거제수 수액은 위장병에 특효가 있다고 전해지지만 양이 너무 적은데다 상하기 쉬워 귀한 존재였다고 한다. 이러한 거제수나무가 많이 있어 선재길의 세 번째 길 이름을 ‘거제수나무길’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네 번째 길은 ‘화전민길’이다. 일제강점기 오대산의 울창한 산림을 벌채하기 위한 인력들이 모여들어 150여 가구 300여명이 살았는데 겨울에는 벌목을 하고 여름에는 화전을 일구고 살았다고 한다. 1975년 오대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을 때에도 화전민 마을은 일부가 존재했으나 1976년 화전민 이전 정착이 완료되어 없어졌다. 선재길의 네 번째 길은 예전 화전민들이 사는 지역을 통과하고 있어 길 이름을 ‘화전민길’이라 칭했다고 한다. 

 

오대산 선재길 안내표식. 오대산 선재길 안에는 곳곳에 안내표식이 있다. “깨달음, 치유의 천년 옛길! 오대산 선재길” 


마지막 다섯 번째 길은 ‘왕의길’이다. 조선시대 세조는 상원사 입구 계곡에서 목욕을 하는 중 문수동자를 만나서 피부병을 고쳤고 그 때문에 세조가 상원사에 자주 행차하여 문수보살과 관련된 많은 전설을 남겼다. 상원사 입구에는 세조가 목욕할 때 어의를 걸었다는 ‘관대걸이’가 있다. 

이와 같은 다섯가지 테마의 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선재길 종착지인 상원사 입구에 도착하게 된다. 

필자는 선재길 입구에서 걷기를 시작하여 오후 12시에 첫 번째 길인 ‘산림철길’ 시작지점에 도착하였다. 소나무, 참나무 등 나무로 울창한 숲을 지나고 오대천 계곡의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산림철길을 걸어 오후 12시 15분 일제강점기 제재소 터에 도착하였다.  
 

 

선재길 두 번째 길, 조선사고길. 선재길의 두 번째 길은 ‘조선사고길’이다. 선재길 중간에 조선왕족실록과 의궤를 보관하던 조선 후기 5대 사고 중의 하나인 ‘오대산 사고(史庫) 터’가 있었는데, 이 ‘오대산 사고’에는 조선왕조실록 788책이 있었다. 조선사고길 안내판 바로 뒤에 ‘섶다리’가 있다. 
 

제재소 터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서 오후 12시 18분 ‘회사거리’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오대산에서 벌목한 나무를 가공하던 회사(제재소)가 있어서 ‘회사거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금은 회사(제재소)도 없었고 회사거리에서 모여 살던 화전민들도 모두 이주하여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회사거리’라는 명칭이 일제강점기 때 오대산의 힘들었던 수탈의 역사를 나타내 보이고 있다. 

필자는 ‘회사거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일제시대 오대산에서 일어났던 과거의 흔적을 곱씹으며 역사를 잊은 사람이 되지 말자고 다짐하였다. 

 

섶다리. 선재길 두 번째 길인 ‘조선사고길’ 중간에 ‘섶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섶다리’는 낮은 강이나 계곡에 임시로 만든 목교로 물에 잘 썩지 않는 물푸레나무와 버드나무로 기등을 세우고 소나무나 참나무로 상판을 만든 뒤 솔가지나 잎이 달린 가지를 엮어 깔고 그 위를 흙으로 다지는 방식으로 만든다.  
 

다시 트레킹을 재개하여 오대천 계곡 물소리를 들으면서 계곡 옆으로 난 길과 전나무 숲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고 오후 3시 1분 선재길의 두 번째 길인 ‘조선사고길’ 안내판이 있는 ‘섶다리’에 도착하였다. 

‘섶다리’는 낮은 강이나 계곡에 임시로 만든 목교로 물에 잘 썩지 않는 물푸레나무와 버드나무로 기등을 세우고 소나무나 참나무로 상판을 만든 뒤 솔가지나 잎이 달린 가지를 엮어 깔고 그 위를 흙으로 다지는 방식으로 만든다.  

필자는 섶다리를 걸어서 오대천을 넘었는데 푹신푹신한 섶다리가 생각보다는 안정적이어서 마음이 놓였다.  

 

선재길 세 번째 길, 거제수나무길. 선재길의 세 번째 길은 ‘거제수나무길’이다. 우리 조상들은 곡우를 전후하여 ‘곡우물’을 마시면 잔병을 앓지 않고 건강해진다고 믿었던 풍습이 있었는데 거제수나무 수액이 곡우물로 마시는 것의 으뜸이었다고 한다. 거제수 수액은 위장병에 특효가 있다고 전해지지만 양이 너무 적은데다 상하기 쉬워 귀한 존재였다고 한다. 이러한 거제수나무가 많이 있어 선재길의 세 번째 길 이름을 ‘거제수나무길’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섶다리를 걸어 오대천을 가로지른 뒤 계속 선재길을 걸어 오후 1시 17분 선재길 세 번째 길인 ‘거제수나무길’ 안내판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거제수나무’는 북한에서는 ‘물자작나무’라고 불리우는데 척박하고 건조한 지역에서 비교적 잘 자라는 나무라고 한다.

 

이른 봄에 수액을 채취하여 약용이나 식용으로 이용하는데 위장병에 좋다고 하여 곡우날 받아서 마시는 풍습이 있다. 태백산, 설악산과 중부 이북에서 자라나고 개체수는 많지 않다고 한다.  

필자는 거제수나무길을 걸어 오후 1시 28분 나무로 만들어진 ‘갈골교’를 지났고, 오후 1시 33분 선재교 네 번째 길인 ‘화전민길’ 안내판이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이곳에는 비교적 넓직한 화전터 밭이 펼쳐져 있었다. 화전터 밭이 있는 산길을 걷다보니 오후 1시 46분 ‘선재교’에 도착하였다.  

 

선재길 네 번째 길, 화전민길. 선재길의 네 번째 길은 ‘화전민길’이다. 일제강점기 오대산의 울창한 산림을 벌채하기 위한 인력들이 모여들어 150여 가구 300여명이 살았는데 겨울에는 벌목을 하고 여름에는 화전을 일구고 살았다고 한다. 1975년 오대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을 때에도 화전민 마을은 일부가 존재했으나 1976년 화전민 이전 정착이 완료되어 없어졌다. 선재길의 네 번째 길은 예전 화전민들이 사는 지역을 통과하고 있어 길 이름을 ‘화전민길’이라 칭했다고 한다. 
 

선재교를 건너 산 속에 난 길을 걸어 필자는 오후 1시 50분에 ‘연화탑’이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1965년 고려대 불교학생회 불자 10명이 상원사 스님의 다비식에 참석한 후 월정사로 돌아오는 도중 갑작스런 폭우로 유명을 달리한 사고가 있었는데 그 넋을 기리고자 세운 탑이 ‘연화탑’이다.  

필자는 연화탑을 보고 잠시 합장을 한 뒤 트레킹을 계속하였다. 오후 2시 14분 ‘상원교’를 지났고 오후 2시 21분에는 ‘신선골 출렁다리’를 통과하였다. 

 

눈 내리는 선재교. 1월 중순에 오대산을 비롯한 평창지방에는 눈이 자주 내린다. 약간 흩뿌리는 하얀 눈이 내린 선재교는 그 풍경이 자못 낭만적이다. 


눈이 살짝 내리고 제법 바람이 부는 날씨여서 약간 추웠지만 트레킹을 계속하였고 어느덧 선재길의 마지막 다섯 번째 길인 ‘왕의길’에 접어들었다. ‘왕의길’에 왔다는 것은 상원사 입구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살짝 흩뿌리는 눈보라를 헤치고 ‘왕의길’ 숲길을 걸으면서 걷고 있는 나의 존재의 무게를 가늠해보는 상념에 빠지기도 하였다. 어느덧 오후 2시 52분 상원사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하여 선재길 트레킹을 끝마쳤다.   

 

눈 쌓인 조릿대숲. 오대산 선재길에는 조릿대숲이 제법 많이 분포되어 있다. 겨울철 조릿대 숲에 눈이 쌓이면 녹색의 조릿대 잎사귀는 하얀 눈옷을 입어 장관을 이룬다.   


이번 월정사 경내 산책을 포함한 평창 오대산 선재길 트레킹 거리는 11.67km 였고, 트레킹 시간은 휴식시간을 포함하여 3시간 34분이 소요되었다. 

# 오대산 선재길 트레킹 코스 : 월정사 주차장(11:18) - 월정사 금강교(11:22) - 월정사 천왕문(11:24) - 청류다원(11:28 ~ 11:45) - 월정사 적광전(11:51) - 선재길 입구(11:55) - 1.산림철길(12:00) - 제재소 터(12:15) - 회사거리(12:18) - 2.조선사고길, 섶다리(13:01) - 3.거제수나무길(13:17) - 갈골교(13:28) - 4.화전민길(13:33) - 선재교(13:46) - 연화탑(13:50) - 상원교(14:14) - 출렁다리(14:21) - 상원사탐방지원센터(14:52) 

  

오대산 상원사 표지석. 상원사(上院寺)는 월정사의 말사이며, 6·25전쟁 때 한암스님이 국군의 작전상 필요에 따른 강제소각을 몸으로 막은 것으로 유명하다. 상원사에는 목조문수동자좌상, 상원사 동종 같은 국보 문화재가 있으며, 최근에는 문수전 아래 계단 옆에 쌍으로 있는 ‘고양이상’이 고양이 덕후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선재길 끝부분 상원사탐방지원센터 인근에 오대산 상원사 표지석이 자리잡고 있다. 


이번 오대산 선재길 트레킹은 필자에게는 단순한 트레킹에서 그치지 않고 대자연 속에서 나의 존재와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을 탐구하는 구도자의 몸짓이라고 할 수 있었다.  

상원사탐방지원센터에서 고마운 분들이 승용차로 필자를 월정사 주차장까지 태워 주었다. 착한 업(業)을 쌓는 것이 부처가 되는 지름길이라고 했으니 그분들의 선행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배태시킬 것이다. 필자는 월정사 주차장에 있는 승용차를 타고서 약 3시간 정도 운전하여 서울로 돌아왔다. 

  

오대산 선재길 트레킹코스 및 기록

 


[저작권자ⓒ 뉴스써치.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