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마이산 산행기

김평진 기자 / 기사승인 : 2023-05-20 23:4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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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산 금당사 일주문. 마이산 남부주차장에서 북쪽 방향으로 약 10분 정도 거리에 금당사(金堂寺) 일주문이 있다. 마이산 ’금당사(金堂寺)‘는 현재 열반종의 본찰 역할을 하는 곳이다. 금당사는 삼국시대 말 고승이었던 보덕화상의 상수제자인 무상화상과 그 제자 금취가 함께 세운 절이다. 원래 금당사는 현재의 금당사에서 1.5km 가량 북쪽 산 위에 있는 현재 ’고금당’에 있었다. 금당사는 고려말 고승 나옹대사가 큰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금당사는 임진왜란 때 승군의 사령부였으나 왜군에 의해 금당사에 주둔했던 승군이 전멸당하고 사찰이 모두 불태워졌다고 한다. 17세기 후반 현재 위치에 재건되었고 구한말 대완스님이 주지스님일 때에는 항일 의병운동결사체 창의동맹이 결성된 곳이기도 하다. 

 

 

[뉴스써치] 마이산(馬耳山)은 전북 진안군에 있는 산으로, 산의 모양이 말(馬)의 귀(耳)와 같이 두 암봉(암마이봉, 숫마이봉)이 나란히 솟아있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서쪽에 있는 봉우리가 암마이봉(해발 687.4m)이고, 동쪽에 있는 봉우리가 숫마이봉(해발 681.1m)이다.

마이산의 경우 ‘숫마이봉’은 산행이 불가능하다. ‘암마이봉’은 동절기에는 안전을 위해 산행이 통제되며 3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만 산행이 허용된다.

 

 

 

비룡대 전망대 정자. 마이산 ‘고금당’에서 능선 동쪽으로 약 1km 거리에 해발 527m 높이의 ‘나봉암’이라는 봉우리가 있다. 나봉암 정상에는 ‘비룡대(飛龍臺)’라는 이름의 전망대 정자가 있다.


마이산의 경우 바위가 부분적으로 움푹 패어있는 독특한 지형으로 유명하다. 마이산의 암석체는 화강암이 아니라 모래와 진흙으로 이루어진 퇴적층에 자갈이 곳곳에 박혀있는 ‘역암’이다. 마이산 ‘역암’ 바위는 오랜 시간 풍화작용과 침식을 통해 바위에 박혀져 있던 자갈이 빠져서 떨어져 나가 자갈이 있던 곳만 움푹 패어있는데 이를 ‘타포니(Tafoni) 지형이라 한다.

마이산은 산의 모양도 유명하지만 수많은 돌탑이 있는 ’탑사‘로 유명하다. 또한 ’탑사‘ 북쪽에 ’은수사‘라는 절이 있는데 태조 이성계의 조선 개국과 관련한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비룡대에서 바라본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해발 527m 높이인 나봉암 정상에 있는 ‘비룡대(飛龍臺)’ 전망대 정자에서는 암마이봉, 숫마이봉 뿐만 아니라 마이산 전체 풍광이 한눈에 모두 조망된다. 

 

 

기자는 지난 2월 26일 기자가 봉사하고 있는 큰별나눔봉사회 산악회원들과 함께 전북 진안 마이산 산행을 다녀왔다. 서울 화곡동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오전 11시경 마이산 남부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마이산 남부주차장에서 신발끈을 고쳐 맨 뒤 오전 11시 본격적으로 마이산 산행을 시작하였다. 북쪽 방향으로 걸어 고금당에 이른 뒤 능선을 타고 동쪽 방향으로 진행하여 비룡대, 성황당을 지나고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봉두봉을 거쳐 탑사로 하산하고, 탑사에서는 북쪽 방향으로 걸어 은수사, 천황문을 넘어 마이산 북부주차장까지 산행하는 코스를 계획하였다. 

 

 

봉두봉 정상에서 바라본 탑영제. ‘탑영제’는 마이산 남부 기슭에 있는 저수지이다. 탑영제는 마이산 탑의 그림자가 호수에 비친다고 하여 그러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현재 탑영제에는 수변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마이산 봉두봉 정상에서는 남서쪽 방향으로 탑영제가 한눈에 조망된다.


마이산 남부주차장에서 북쪽 방향으로 약 10분 정도 걸어 오전 11시 10분 금당사(金堂寺) 일주문에 도착하였다. 마이산 ’금당사(金堂寺)‘는 현재 열반종의 본찰 역할을 하는 곳이다. 금당사는 삼국시대 말 고승이었던 보덕화상의 상수제자인 무상화상과 그 제자 금취가 함께 세운 절이다. 

 

원래 금당사는 현재의 금당사에서 1.5km 가량 북쪽 산 위에 있는 현재 ’고금당’에 있었다. 금당사는 고려말 고승 나옹대사가 큰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금당사는 임진왜란 때 승군의 사령부였으나 왜군에 의해 금당사에 주둔했던 승군이 전멸당하고 사찰이 모두 불태워졌다고 한다. 17세기 후반 현재 위치에 재건되었고 구한말 대완스님이 주지스님일 때에는 항일 의병운동결사체 창의동맹이 결성된 곳이기도 하다.

 

 

봉두봉에서 바라본 암마이봉 서측 사면. 마이산 ‘봉두봉’은 해발 545m 높이의 봉우리이다. 봉두봉 정상에서는 암마이봉 서측 사면이 눈앞에 가까이 보인다.


기자는 마이산 일주문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고금당’으로 향하였다. ‘고금당(古金堂)’은 천상굴이라는 바위동굴 법당에서 출발하였다. 이 바위동굴에서 나옹대사가 도를 닦았다고 한다. 또한 고금당은 현 조계종의 법맥을 잇는 경허선사가 전봉준의 딸을 8년 동안 숨겼던 일화가 있다. 경허선사의 여동생이 전봉준과 결혼하였기에 경허선사와 전봉준은 처남 매제 사이였다고 한다.

기자는 오르막 산길을 한참 걸어 오전 11시 40분 고금당 아래 삼거리에 도착하였다. 잠시 ‘고금당’에 들러 지금은 입적한 옛 고승들인 무상화상, 금취, 나옹대사, 경허선사가 참선(參禪)을 하면서 고뇌와 깨달음을 추구했던 열정을 떠올리며 잠시 묵상을 하였다.

 

 

마이산 탑사와 돌탑. 마이산에는 돌탑으로 유명한 ‘탑사(塔寺)’가 있다. ‘탑사’의 돌탑은 이갑룡(李甲龍) 처사가 1800년대 후반부터 혼자 쌓은 것으로 돌탑들의 형태는 일자형과 원뿔형이 대부분이며 크기는 다양하다. 이 돌탑들은 처음 쌓인 이후로 현재까지 단 한 번도 무너지거나 새로 쌓은 흔적이 없는데 사이사이에 최대한 틈이 벌어지지 않도록 작은 돌 여러 개를 끼워 틈새를 메워 견고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틈새를 완전히 메우지 않고 어느 정도 공간을 두어서 바람이 통하도록 되어 있는 구조로 만들어서 태풍 등 강풍이 불어도 끄떡없이 버티고 있다고 한다.


고금당 아래 삼거리에서 동쪽 능선 방향으로 산행을 재개하였고 약 1km 정도 능선을 걸어 올라가 오후 12시 8분에 해발 527m 높이의 ‘나봉암’에 도착하였다. 나봉암 정상에는 ‘비룡대(飛龍臺)’라는 이름의 전망대 정자가 있는데 암마이봉, 숫마이봉 뿐만 아니라 마이산 전체 풍광이 한눈에 모두 조망된다.

기자는 일행들과 함께 마이산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는 ‘비룡대(飛龍臺)’에서 30여분 정도 휴식을 취하면서 가져온 간식을 서로 나누어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후 1시 39분 다시 산행을 재개하여 동쪽 방향으로 능선을 걸어 ‘탑영제삼거리’와 ‘성황당’을 지난 후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산행을 계속하였고 오후 1시 22분 ‘봉두봉’에 도착하였다.

 

 

 

마이산 타포니 지형. 마이산의 경우 바위가 부분적으로 움푹 패어있는 독특한 지형으로 유명하다. 마이산의 암석체는 화강암이 아니라 모래와 진흙으로 이루어진 퇴적층에 자갈이 곳곳에 박혀있는 ‘역암’이다. 마이산 ‘역암’ 바위는 오랜 시간 풍화작용과 침식을 통해 바위에 박혀져 있던 자갈이 빠져서 떨어져 나가 자갈이 있던 곳만 움푹 패어있는데 이를 ‘타포니(Tafoni) 지형이라 한다.


‘봉두봉’은 해발 545m 높이의 봉우리로 봉두봉 정상에서는 암마이봉 서측 부분이 눈앞에 보인다. 봉두봉 남측 사면의 절벽 면에는 파인 동굴들이 여러 개 있는데 바로 ‘봉두굴’이다. 기자는 봉두봉 정상에서 봉우리 남서쪽 아래에 있는 ‘탑영제’를 바라보며 잠시 마이산의 대자연에 흠뻑 빠졌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탑사를 향해 산길을 내려갔고 오후 2시 3분 돌탑으로 유명한 ‘탑사(塔寺)’에 도착하였다. ‘탑사’의 돌탑은 이갑룡(李甲龍) 처사가 1800년대 후반부터 혼자 쌓은 것으로 돌탑들의 형태는 일자형과 원뿔형이 대부분이며 크기는 다양하다.

 

이 돌탑들은 처음 쌓인 이후로 현재까지 단 한 번도 무너지거나 새로 쌓은 흔적이 없는데 사이사이에 최대한 틈이 벌어지지 않도록 작은 돌 여러 개를 끼워 틈새를 메워 견고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틈새를 완전히 메우지 않고 어느 정도 공간을 두어서 바람이 통하도록 되어 있는 구조로 만들어서 태풍 등 강풍이 불어도 끄떡없이 버티고 있다고 한다.

 

 

 

은수사와 숫마이봉. 마이산 탑사에서 북쪽 방향이며 숫마이봉 바로 남쪽 아래 ‘은수사(銀水寺)’라는 절이 있다. 은수사는 조선 초기에는 ‘상원사’라 했는데 조선 태조 이성계의 건국설화인 ‘몽금척(夢金尺)’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은수사 경내에는 ‘줄사철군락’과 ‘청실배나무’라는 천연기념물 2가지가 있다. 은수사 바로 북쪽에 숫마이봉이 자리잡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탑사의 돌탑 앞에서 개인 및 가족과 관련한 소망이 이뤄지길 기원하고 있었다. 기자도 잠시 돌탑 앞에 서서 돌탑을 쌓은 이갑룡 처사의 땀과 돌탑 앞에서 기도하였던 많은 사람들의 염원들에 대해 잠시 생각하면서 차분한 상념에 잠겼다.

다시 걸음을 재개하였고 탑사에서 북쪽으로 난 경사길을 15분 정도 올라가 오후 2시 23분 ‘은수사(銀水寺)’에 도착하였다. 은수사는 조선 초기에는 ‘상원사’라 했는데 조선 태조 이성계의 건국설화인 ‘몽금척(夢金尺)’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은수사 경내에는 ‘줄사철군락’과 ‘청실배나무’라는 천연기념물 2가지가 있는데, 청실배나무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마이산을 찾아와 기도를 마친 뒤 이 증표로 씨앗을 심었는데 그 씨앗이 싹이 터 청실배나무로 자라났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은수사는 조선 태조 이성계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고 현재 마이산 제단(祭壇)도 은수사 경내에 있다.

 

 

천왕문에서 바라본 숫마이봉. 은수사에서 북쪽으로 난 급경사의 계단을 올라가면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이 만나는 고개가 있는데 바로 ‘천왕문’이다. 천왕문에서는 서쪽으로 암마이봉 정상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있으며, 동쪽으로 숫마이봉 화엄굴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기자는 은수사 전각과 천연기념물 등을 구경한 뒤 은수사에서 북쪽으로 난 급경사의 계단을 올라갔고 오후 2시 43분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이 만나는 고개인 ‘천왕문’에 도착하였다. 천왕문에서는 암마이봉 정상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있었는데 기자가 마이산을 간 때가 2월말이라서 암마이봉까지 올라가는 등산로가 폐쇄되어 있었다.

기자는 아쉬웠지만 암마이봉 정상까지 산행을 다음으로 미루고 북쪽방향으로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가 오후 2시 57분 마이산 북부주차장에 도착하여 진안 마이산 산행을 끝마쳤다.

 

 

천왕문 올라가는 계단. 마이산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이 만나는 고개 지점에 ‘천왕문’이 있다. 천왕문에서 올라가려면 제법 경사가 급한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이번 진안 마이산 산행거리는 7.01km 였고, 산행시간은 간식시간 및 휴식시간을 포함하여 3시간 57분이 소요되었다.

# 마이산 산행 코스 : 전북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 남부주차장(11:00) – 금당사 일주문(11:09) - 고금당 아래 삼거리 (11:40) - 나봉암·비룡대(해발 527m, 간식 12:08 ~ 12:39)  - 탑영제삼거리(13:04) - 봉두봉(해발 545m, 13:22)  – 탑사(14:03) - 은수사(14:23) - 천왕문(14:26) -  진안군 진안읍 마이산 북부주차장(14:57)

 

 

진안 마이산 산행코스 및 기록



산행 후 마이산 북부주차장 인근에 있는 전주식당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하면서 뒷풀이를 한 뒤 큰별나눔봉사회 산악회원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상경하였다.

이번 마이산 산행은 아름답고 독특한 풍경을 감상하면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걸었던 즐거운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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